포모가 기대감으로 바뀐 48시간
첫 IR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이 게임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질문이 나오면 이렇게 답할 생각이었다. 여러 뱀서라이크를 하며 반응이 좋았던 요소를 골라 하나의 경험으로 묶었다고.
그 답만으로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무엇을 가져왔는지는 말했어도 왜 하필 우리여야 하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글로벌에서 통할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막혔다. 아직 글로벌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거짓은 없었다. 그런데 듣는 사람에게는 다음 질문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 건가?
상을 받지 못했다. 질문도 몇 개 나오지 않았다. 첫 IR이라는 티가 났다.
그래도 그 짧은 질의응답은 행사의 가장 큰 수확으로 남았다. 부족한 답을 해 본 덕분에 다음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문장이 됐다.
48시간 안에 만드는 일
2026 서울 인디게임 개발 챌린지에 나가기 전에는 서류를 준비했다. 우리 팀은 11개 팀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개발 시간은 만 48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주제를 해석하고 기획해 결과물을 내야 했다. 끝에는 두 번의 발표와 첫 IR이 기다렸다.
행사 시작 직후에는 “하루가 8시간이니까, 그럼 6일이네!”라는 농담도 나왔다. 여덟 시간이 지날 때마다 “5일 남았다~”, “아직 3일이나 남았다~”라고 했다.
48시간을 6일로 늘려 잡는 농담이었지만, 실제로도 그만큼 길고 진하게 함께 보내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게임 이름은 현장에서 방과후요괴뎐으로 붙였다. 당일에 정한 설정에 가까운 이름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게임보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달라진 팀이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난 뒤 일요일 저녁 6시경까지 거의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음료와 다과는 계속 나왔고 팀원들은 레드불을 한 사람당 네다섯 캔쯤 비웠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다.
무박 3일을 낭만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몸에는 분명 무리였다. 다음에는 더 나은 방식으로 버텨야 한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이걸 정말 끝낼 수 있을까’를 오래 붙들고 있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이 먼저 답을 요구했다.
2026 서울 인디게임 개발 챌린지의 팀 테이블
48시간은 좋은 아이디어를 끝없이 다듬을 틈을 주지 않는다. 팀은 매 순간 무엇을 버릴지 골랐다.
어떤 기능이 게임의 첫인상을 남길지,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발표에서 바로 드러날 문제는 무엇인지, 한 번 더 만드는 대신 어디까지 포기할지 계속 합의했다.
평소에도 하던 개발 일이지만 시간 제한이 생기자 판단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다른 팀을 지켜보며 많이 배웠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보여 줄 장면을 정하고 그 장면까지 거꾸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기능을 줄이는 대신 한 가지 감각을 끝까지 밀었다.
결과물만 보며 ‘잘 만들었다’고 감탄할 때와, 바로 옆에서 그들이 범위를 자르고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을 볼 때는 달랐다.
잘하는 팀의 방식은 다음에 참고할 실제 방법이 됐다.
발표 자리에 서자 개발할 때의 선택이 다르게 보였다. 화면 안에만 있던 선택을 낯선 사람에게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해야 했다.
무엇을 보여 줄지 정하는 일과 무엇을 말할지 정하는 일은 맞물려 있었다.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따라올 순서까지 함께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도 처음인데 여기까지 만들었다는 감각이 남았다. 막연한 자신감과는 다르다.
어디에서 시간이 새는지, 언제 의견을 맞춰야 하는지, 마지막 몇 시간에 무엇이 무너지는지까지 겪고 얻은 자신감이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는 기대도 여기서 나왔다.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긴 것
IR의 두 질문은 결과물의 부족함과 함께 우리가 놓친 것을 짚었다.
첫 번째는 차별점이 기능 목록에 머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보이는 요소를 잘 묶는 일은 출발점이다.
그 조합이 어떤 사람에게 왜 필요한 경험인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반응을 ‘나중에 확인할 것’으로 미뤄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글로벌 마케팅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답은 맞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아직 모르는 상태를 언제, 어떻게 줄일지도 함께 설명해야 했다.
그때부터 시장 반응을 다음 실험으로 채울 가설로 보기 시작했다. 발표에서 방어할 빈칸으로 남겨 두지 않았다.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전에는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불안으로 번지기 쉬웠지만, 행사가 끝난 뒤에는 부족한 점이 다음 작업 목록이 됐다.
차별점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연습, 누가 어떤 순간에 재미를 느끼는지 확인하는 방법, 그 반응을 다음 개발에 반영하는 방식.
이름이 생긴 문제는 팀이 함께 다룬다.
답을 확인하는 방법
앱인토스 안에서는 지금도 매일 약 40명의 사용자가 순수 오가닉으로 들어온다.
전체 사용자 규모는 아직 작지만, 집계가 끝난 코호트의 D1 리텐션은 대체로 40~60%, D2는 20~40%다. 리텐션만 놓고 보면 기분 좋은 숫자다.
앱인토스에서 확인한 일자별 리텐션
그래도 이 숫자만으로 우리가 답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니앱에는 설치 장벽이 없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정말 우리 고객인지, 앱인토스 안에서 우연히 들어온 사람들인지 분리하기 어렵다.
들어오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환경의 반응을 밖에서도 통할 반응이라고 곧장 믿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설화에서는 처음으로 Google Ads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아예 처음 해 보는 숙제는 아니다.
예전에 혼자 만든 퍼즐 게임 케플러팝에서 최대한 많은 국가를 타깃으로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인도에서 유입은 많이 나왔지만 실제 사용자 전환은 10명도 되지 않았고 광고비만 하루 4만 원쯤 나갔다.
당시의 기록처럼 유입이 많다는 숫자와 제품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를 수 있었다. 꽤 비싸게 배운 경험이었다.
이번에는 한국만 타깃으로 두고 출발한다.
플레이어블 HTML도 붙여서 광고를 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경험에 반응하는지 더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려 한다.
일단 넓게 뿌리고 숫자를 기다리기보다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어떤 반응을 다음 개발에 가져갈지부터 정하고 있다.
AI를 따라잡는 대신, 지금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커톤 이후 게임을 만드는 방식과 함께 AI를 대하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AI 시대의 속도는 종종 포모를 만든다. 새로운 모델과 도구가 나올 때마다 지금 쓰는 방식이 금방 낡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우고 따라가는 일 자체가 목표가 되곤 했다.
해커톤에서는 다른 감각을 얻었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를 움직인 건 새 도구를 얼마나 아는지보다 지금 손에 있는 것으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일이었다.
서로의 판단을 빠르게 맞추고 끝까지 보여 줄 장면을 만드는 일도 중요했다.
AI는 그 과정을 돕는 좋은 도구다.
하지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지, 무엇을 포기할지, 받은 반응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대신 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포모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모든 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지금 팀이 잘하는 일을 더 잘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이미 가진 강점에서 출발하되, 필요한 도구와 방법은 그 강점을 더 멀리 보내는 데 쓰자는 생각이다.
해커톤에서 생긴 협동 플레이에 대한 관심도 남았다. 지금 팀이 출시를 준비하며 개발 중인 설화에는 협동 플레이를 실제로 넣고 다듬고 있다.
해커톤에서 완성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함께 움직이는 재미를 확인했다.
그 감각은 지금 제품의 질문이 됐고 개발의 선택으로 남았다. 경험이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함께 다음을 준비하는 팀
다음을 기다리는 팀
행사가 끝난 뒤 팀원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모두가 갑자기 대단한 자신감에 찬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IR에서 대답하지 못한 질문도 남아 있다.
그래도 다음 해커톤에 나가면 더 잘 준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좋았던 건 팀에 기대감이 생긴 일이다.
기대감은 ‘이번에는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보다 다음에는 이 부분을 바꿔 보자는 구체적인 제안에 가깝다.
혼자라면 버거웠을 시간을 함께 지나왔고, 다른 팀이 일하는 방식을 봤으며, 우리 결과물을 낯선 사람 앞에서 설명해 봤다.
그 경험들이 다음 시도를 조금 덜 두렵게 만들었다.
그 48시간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팀이라는 증명은 아니었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팀으로 바꿔 놓은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