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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최소 품질선

들어가며

최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인디게임 지원사업 신청서를 준비하면서 여러 AI에게 사업계획서를 검토받았다.

공고문, 신청서 요구사항, 기존 제품 소개 자료까지 넣었다. 맥락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토를 받을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

어떤 AI는 대회의 목적을 더 분명히 반영하라고 했다. 어떤 AI는 심사위원이 궁금해할 지점을 더 고려하라고 했다. 어떤 AI는 차별성과 실행 계획을 더 구체화하라고 했다.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 점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계속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 고치면 더 나아질 것 같았고, 다른 AI에게 다시 보여주면 또 다른 개선점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평생 첨삭받을 수도 있겠는데.


쉬워진 만큼 끝내기는 어려워졌다

AI는 산출물을 쉽게 만들어준다.

딸깍하면 초안이 나오고, 다시 딸깍하면 더 나은 버전이 나온다. 공고문에 맞게 다듬을 수도 있고, 심사위원 관점에서 평가받을 수도 있고, 더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쉬워진 만큼 끝내기는 더 어려워졌다.

70점짜리 같으면 80점까지 올리고 싶다. 80점짜리 같으면 90점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90점쯤 된 것 같아도 다시 검토를 받으면 또 다른 약점이 나온다.

그러면 질문이 바뀐다.

이건 어디까지가 개선이고, 어디부터가 불안인가.

AI 시대에는 장인정신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직접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드는 장인정신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무한히 만들고, 무한히 고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을 내보낼 만하다고 인정할지 결정하는 감각에 가깝다.

문서는 나온다. 하지만 그 문서를 내 최종 산출물로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결국 제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나다.

AI는 만드는 비용을 낮췄지만, 내보내는 판단의 무게까지 낮춰주지는 않는다.


바늘만 던지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여전히 양이 질을 이긴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완벽한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보다, 일정 수준을 넘긴 여러 개를 세상에 던지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 제품이든 게임이든 글이든, 시장과 독자와 사용자의 반응은 머릿속에서 상상한 완성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말이 아무거나 많이 던지라는 뜻은 아니다.

낚시를 하려면 최소한 미끼는 걸어야 한다. 미끼도 없는 바늘을 백 번 던지는 것은 실험이라기보다 노이즈에 가깝다.

요즘 AI slop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AI로 만든 저품질 콘텐츠가 웹에 쏟아지고, 모바일 스토어에도 비슷한 앱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생성 비용이 낮아지면 시도는 늘어난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최소한의 기준을 넘기지 못한 결과물까지 너무 쉽게 세상에 나온다는 점이다.

많이 던지는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에, 오히려 던질 만한 최소 기준이 더 중요해졌다.

나도 70점이라고 믿은 40점짜리를 너무 쉽게 내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생각하는 질문은 양이냐 질이냐가 아니다.

무엇은 70점으로 내보내도 되고, 무엇은 90점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실험용 프로토타입은 거칠어도 된다. 광고 소재나 랜딩페이지는 많이 던져보는 편이 낫다. 아직 시장 반응을 보기 전이라면, 혼자 완벽을 상상하며 오래 붙잡는 것보다 빠르게 내보내고 배우는 쪽이 낫다.

하지만 어떤 것은 낮은 품질로 내보내면 안 된다.

사용자가 처음 만지는 5분. 심사위원이 판단의 근거로 삼는 핵심 문단. 브랜드가 약속하는 감각.

이런 것들은 단순한 실험 재료가 아니라 신뢰의 일부다.

모든 것을 100점으로 만들 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이 최소한의 미끼를 갖춘 실험이고, 무엇이 바늘뿐인 투척인지 구분해야 한다.


내 점수와 시장의 점수

처음 결과물을 내보낼 때 나는 나름의 점수를 매긴다.

이 정도면 괜찮은지, 아직 부끄러운지, 그래도 반응을 볼 만한지 판단한다. 하지만 시장에 나간 뒤에는 그 점수가 더 이상 내 것만은 아니다.

다운로드 수, 결제, 이탈률, 리뷰, 재방문, 주변 사람들의 말. 그런 것들이 내가 매긴 점수와 뒤엉킨다.

제품을 만든다는 건 어쩌면 이 과정에 가깝다.

내 점수로 시작해서, 시장의 점수와 계속 섞이는 일.

내가 보기엔 80점인데 시장은 40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60점짜리 실험인데 누군가는 거기서 가능성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벽한 점수를 맞히려고만 하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반대로 내 최소 기준 없이 시장에만 던지면 무엇을 배운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최소 품질선은 제품 내부의 완성도만으로 정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어떤 장면에서, 어떤 판단을 받는지도 품질의 일부였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지자체나 정부기관에서 진행하는 공고에 도전하기 시작했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졌다.

처음에는 자금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얻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신청서를 쓰고, 사업계획서를 고치고, 내 제품을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공고에 지원하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제품의 점수와, 외부에서 보는 제품의 점수를 맞춰보는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제품은 깎을 수 있다. 닿게 만드는 법은 아직 모른다

나는 지금 소액의 매출이 난 제품을 계속 깎고 있다.

내 기준으로는 아직 더 좋아질 수 있고, 실제로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품을 계속 깎는 것만으로는 어느 순간 한계가 온다.

시장에 던진다고 해도, 마케팅과 영업을 하지 않으면 반응 자체가 충분히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 분야에서 거의 0점에 가깝다.

그래서 지원사업은 나에게 단순히 자금을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에 가깝다.

나는 제품 자체는 잘 깎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시장에 닿게 만드는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러니 봐달라.
그리고 그 방법을 배우게 해달라.

제품을 앱스토어에 올려두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심사위원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기관이 어떤 가능성을 보는지, 멘토가 무엇을 지적하는지, 내 설명이 어디서 막히는지.

이런 것들은 제품 안에만 있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공고에 지원하고, 멘토를 찾고, 내가 모르는 영역을 배울 수 있는 장으로 들어가려 한다.


먼저 기준을 적어두기

AI는 나에게 더 많은 시도를 가능하게 해줬다. 동시에 더 많은 망설임도 만들었다.

더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때로 더 끝내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결과물을 만들기 전에 먼저 기준을 적어두려고 한다.

이번 신청서라면 핵심 문단은 90점까지 책임진다. 제품이 왜 지금 필요한지, 왜 우리가 풀 수 있는지, 지원을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대충 넘기면 안 된다.

반대로 부가 설명은 70점에서 멈출 수 있다. 모든 문장이 가장 아름다운지보다, 심사위원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근거가 충분한지가 더 중요하다.

  • 이건 몇 점이면 내보낼 것인가.
  • 이건 무엇을 검증하기 위한 것인가.
  • 이 결과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은 무엇인가.
  • 어디서부터는 개선이 아니라 불안인가.

무한히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만드는 능력만큼이나 멈추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AI 시대의 장인정신은 더 많이 생성하는 손끝에 있지 않다.

무한한 수정 가능성 앞에서, 이 정도면 세상에 내보낼 만하다고 책임지는 판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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