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드는 싸졌지만, 제품은 여전히 비싸다

이 글은 나의 변명일까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조금 두렵다.

AI 시대의 제품 병목을 말하고, 코드 생산성의 변화를 말하고, 좋은 문제와 채택과 결제를 말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묻게 된다.

이게 정말 인사이트일까. 아니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자기 실패를 그럴듯하게 정리한 변명일까.

성공한 사람이 말하면 전략이 되고, 아직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 말하면 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이 두려움은 AI 에이전트를 쓰기 시작한 뒤 더 커졌다.

예전에는 만들지 못한 이유를 어느 정도 구현 난이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부족했고, 손이 부족했고,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핑계가 약해졌다.

요구사항을 던지면 초안이 나오고, 테스트가 붙고, 문서가 정리되고, PR이 만들어진다.

코드는 정말 빨리 생긴다.

그런데 좋은 제품은 여전히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만들 수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만들었는데도 선택받지 못한 것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연휴의 결제창 앞에서

최근 5일 연휴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이동 경로를 찾고, 식당을 고르고, 관광지 입장권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결제하고, 영수증과 주차권을 챙겼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는 계속 작은 확인과 선택과 결제로 끊겼다.

연휴 둘째 날, 관광지 입장권을 사려고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가족은 옆에서 다음 동선을 물어보고 있었고, 나는 화면을 오가며 운영 시간과 입장권 종류와 주차 정보를 확인했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몇 번이나 뒤로 가기를 눌렀는지 모르겠다.

가격을 확인하고, 운영 시간을 다시 보고, 주차 정보를 찾고, 다시 입장권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 작업실 안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이미 많은 일을 대신하고 있다. 구현 속도만 놓고 보면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관광지를 다니는 현실에서는 내가 여전히 직접 검색하고, 비교하고, 확인하고, 결제하고, 영수증을 챙기고 있었다.

검색은 좋아졌다. 지도도 편해졌다. 추천도 많아졌다.

하지만 소비의 흐름은 생각보다 그대로였다.

코드의 세계는 빠르게 바뀌었는데, 생활의 세계는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코드는 빨라졌지만 소비는 그대로였다

AI가 바꾼 것은 분명하다.

아이디어를 화면으로 옮기는 속도는 빨라졌다. 기능을 실험하는 비용도 낮아졌다. 혼자서 만들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예전 같으면 며칠을 잡아먹었을 작업이 몇 시간 안에 끝나기도 한다. 초기 구현, 리팩터링, 테스트, 문서화, 배포 준비까지 AI가 상당 부분을 도와준다.

하지만 제품이 사용되는 현실은 그렇게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사용자는 여전히 자기 하루 안에서 선택한다. 이미 쓰고 있는 앱이 있고, 익숙한 검색 방식이 있고, 기존 결제 흐름이 있고,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불편이 있다.

제품을 하나 더 만든다고 사용자의 하루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지갑도, 집중력도, 앱 설치 의지도 무한하지 않다.

그래서 제품 공급이 늘어나는 것과 실제로 소비되는 제품이 늘어나는 것은 다르다.

코드는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하루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이번 연휴에 내가 필요했던 것도 기능 하나가 아니었다.

장소 추천, 가족 동선, 입장권 구매, 현장 확인, 주차 정산, 영수증 처리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필요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더 좋은 검색창 하나가 아니었다. 하루의 소비 흐름을 덜 끊기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결국 사용자는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하루를 산다.


예쁜 쓰레기의 기억

나는 예쁜 쓰레기를 만들면서 한 번 배웠다.

화면은 있었다. 플로우도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동작했다.

만들고 있는 동안에는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실패는 코드의 실패가 아니었다. 문제 선택의 실패였다.

사용자의 시간을 가져올 만큼 아프지 않았고, 기존 습관을 바꿀 만큼 중요하지 않았고, 결제라는 문턱을 넘을 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AI가 있으면 이런 것을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더 빨리 만들고, 더 빨리 고치고, 더 빨리 배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빨리 배운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실패의 모양만 더 빨리 갖춘다.

동작하는 화면은 성취감을 준다. PR은 진척처럼 보인다. 문서는 생각이 정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용자가 없고 결제가 없다면, 그 성취감은 쉽게 자기기만이 된다.

이게 내가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AI가 나를 더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잘못된 문제를 고른 나를 자동으로 구해주지는 않는다.


병목은 코드 밖으로 이동했다

AI는 구현 비용을 낮췄다. 하지만 제품의 비용 전체를 낮춘 것은 아니다.

제품이 되려면 코드 밖의 것들이 필요하다.

좋은 문제 선택, 강한 수요, 유통 경로, 온보딩, 결제, 보안, 고객지원, 운영 책임.

AI 에이전트는 구현에 가까운 영역을 크게 압축했다. 하지만 문제를 찾고, 사용자를 설득하고, 신뢰를 만들고, 오래 운영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히려 구현 비용이 낮아질수록 코드 바깥의 비용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걸 누가 쓰지? 왜 써야 하지? 어디서 만나게 하지? 이걸 계속 책임질 수 있나? 돈을 낼 만큼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코드는 아무리 빨리 만들어져도 오래 남기 어렵다.

예전에는 구현이 병목처럼 보였다. 이제는 구현 이후의 질문들이 더 무겁게 남는다.

만드는 것은 쉬워졌지만, 선택받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제품은 사용자의 행동 비용을 이겨야 한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이것을 “채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하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새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고, 결제 수단을 넣고, 기존에 하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실패했을 때 책임질 사람도 믿어야 한다.

이건 꽤 큰 비용이다.

AI는 코드 작성 비용을 낮췄다. 하지만 사용자가 행동을 바꾸는 비용은 같은 속도로 낮아지지 않았다.

제품이 많아졌다고 사용자의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사용자는 더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간다.

좋은 제품은 기능을 추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용자가 원래 하던 소비 방식을 바꾼다. 시간을 쓰는 방식을 바꾸고, 검색하는 방식을 바꾸고, 결제하는 방식을 바꾼다.

하지만 사용자는 웬만해서는 자기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새로운 방식이 조금 더 좋은 정도로는 부족하다. 기존 방식보다 훨씬 자연스럽거나, 훨씬 덜 귀찮거나,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껴져야 한다.

제품이 흐름의 일부만 해결하면 사용자는 나머지를 직접 이어 붙인다.

그 이어 붙이는 비용이 크면 새 제품은 습관이 되기 어렵다.

좋은 제품은 사용자가 “이걸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이 방식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제 결제로 이어진다.


결제는 변명을 끝낸다

말로 좋다고 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관심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오면 써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기 시간을 옮기고, 기존 습관을 버리고, 지갑을 여는 사람은 훨씬 적다.

결제는 사용자가 자기 비용으로 남기는 피드백이다.

그래서 결제는 잔인하지만 필요하다.

결제는 내가 만든 논리와 화면과 데모가 실제 문제에 닿았는지 확인해준다. 내가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제품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고 있는지 알려준다.

신뢰와 책임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사용자는 묻는다.

내 데이터를 맡겨도 되는가. 장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가. 계속 유지될까. 돈을 내도 괜찮을까.

빠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아니다.

AI로 빨리 만든 제품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사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빠르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다.

자기 하루의 일부를 맡겨도 되는지, 자기 돈을 내도 후회하지 않을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사람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제는 칭찬보다 정확하다. 결제는 관심보다 무겁다. 결제는 변명을 끝낸다.


마치며

AI 에이전트는 개발자의 일을 바꾸고 있다. 손으로 코드를 많이 쓰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해지고 있다.

무엇을 만들지 정의하는 능력, 결과물을 검증하는 능력, 잘못된 방향을 버리는 능력, 제품으로 남길 코드를 판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변화는 조금 더 개인적인 곳에 있다.

나는 이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결제될 수 있는 것을 먼저 봐야 한다.

이번 연휴에 느낀 번거로움도 결국 여기로 이어졌다.

관광지를 찾고, 입장권을 확인하고, 가족 동선을 맞추고, 현장에서 결제하고, 주차를 정산하는 작은 과정들.

그 과정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비용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그 비용을 줄여주는 제품에 돈을 낼 것이다. 나는 그 지점을 찾아야 한다.

코드가 아니라 소비. 기능이 아니라 채택. 칭찬이 아니라 결제.

이 기준 앞에서 이 글은 아직 가설이고, 내 제품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변명과 제품을 구분하는 선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코드는 싸졌다. 좋은 제품은 여전히 비싸다.

그 비싼 부분을 피하면, 나는 계속 제품처럼 보이는 실패만 만들게 될 것이다.

좋은 제품은 기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하루를 다시 배치한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센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