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 계속 만드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들어가며
올해 블로그에 10편의 글을 썼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글에 담긴 것보다 담기지 못한 게 더 많았어요. 슬랙 허들에서 “이거 원인이 뭘까요?”를 세 번째 외치던 순간,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모호한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시퀀스 다이어그램을 그리다가 세 번째 화살표에서 멈춰버린 순간들.
동료가 “잠깐만요, 제가 한번 볼게요”라고 말하며 키보드를 넘겨받을 때,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오던 순간들.
그런 것들은 글로 남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회고는 블로그 글의 요약뿐만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에요.
회사가 커지는 걸 지켜보며
올해 아이오트러스트는 누적 매출 100억을 돌파했고, 2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그냥 기사인데, 안에서 보면 다릅니다.
작년 100만불에서 올해 200만불. 2배가 되는 동안 주변 자리에 새 동료가 앉았습니다.
처음 출근한 날, 어색하게 인사하던 그 동료가 지금은 코드리뷰에서 제 실수를 짚어줍니다.
사무실 자리가 부족해져서 9층을 확장했고, 회의실과 방의 벽을 허물어 좌석으로 바꿨어요.
가뜩이나 많았던 슬랙 채널은 AI의 활용과 새로운 프로젝트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런 채널이 있었어?’ 하고 헤매는 날도 생겼습니다.
1월 초, 7년 된 D’CENT 앱을 리뉴얼하면서 제품에 대한 도메인을 크게 배웠어요.
지갑이 무엇이고, 우리 회사가 풀고 싶은 문제는 뭘까.
올해 집중했던 그 앱이 220개국 70만 사용자에게 닿아 있었습니다. 내가 짠 코드가 누군가의 자산을 지키고 있다는 감각. 회사가 커질수록 그 무게가 달라졌어요.
함께 일한다는 것
회사에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건 ‘함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법’이었습니다.
올해 팀에서 FSD 아키텍처를 도입했어요. 처음엔 각자 문서를 읽고 이해한 대로 적용했는데, 구현 방식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이 로직은 어느 레이어에 둬야 해요?” 같은 질문이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토론했습니다. 각자 이해한 걸 공유하고, 부딪히는 부분은 공식 문서를 다시 읽고, 우리 프로젝트에 맞는 기준을 정했어요.
“이건 feature에 두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여러 feature에서 쓰는데 entity가 맞지 않나요?”
“계정 entity의 도메인도 섞여서 shared로 가는 게 맞아 보여요.”
혼자 공부했으면 “내가 이해한 게 맞나?” 계속 의심했을 거예요. 함께 토론하니까 확신이 생겼습니다.
며칠째 안 풀리는 버그가 있었어요. 간헐적으로 데이터가 꼬이는데, 재현이 안 됐습니다. 로그를 아무리 봐도 순서는 맞았어요.
옆자리 동료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요. 본인 업무가 있었는데도 “잠깐 같이 볼까요?”라며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화면을 공유하고 코드를 같이 훑었어요.
“이거 race condition 아니에요? 두 요청이 동시에 들어오면 순서 보장이 안 될 것 같은데.”
30분 만에 찾았습니다. 혼자였으면 하루 더 걸렸을 거예요.
이런 순간들은 블로그에 쓰기 애매해요. 드라마틱하지 않거든요. 영웅적인 야근 이야기도 아니고, 천재적인 해결책도 아니에요. 그냥 옆에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들.
하지만 돌아보면, 성장은 대부분 이런 작은 상호작용들의 누적이었습니다.
일이란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더라고요. 다 함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었어요.
예전엔 제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내심 의기소침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다릅니다. 더 나은 답이 나오면 그게 누구 아이디어였든 상관없어요. 그 변화가 올해 가장 큰 성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호함을 좁히는 일
올해 가장 많이 한 일은 코딩이 아니었습니다. 업무를 분석하고 설계하는 데 보낸 시간이 더 많았어요.
회의실에서는 “이 기능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한 시간쯤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A 방식으로 하면 빠른데, 나중에 확장이 어려워요.”
“B 방식은 시간이 더 걸리는데, 구조는 깔끔해요.”
“근데 이거 꼭 지금 해야 해요? 데이터 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아요?”
결국 “이번엔 A만 하고, B는 데이터 보고 결정하죠”로 좁혀지는 일. 흐릿한 것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그게 진짜 일인지 몰랐습니다. 코드를 짜야 일한 것 같았거든요. 회의만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오늘 뭐 했지?’ 싶었어요.
하지만 모호한 채로 시작한 작업은 결국 돌아옵니다. 그런 적이 있었어요. 기획과 개발이 서로 다르게 이해한 상태로 일주일을 달렸는데, 리뷰에서 “이거 우리가 원한 게 아닌데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같은 문서를 보고도 그린 그림이 달랐던 거예요. 결국 처음부터 다시 했어요.
그 이후로는 코드 한 줄 치기 전에 질문부터 했습니다.
“이 제안의 배경이 뭐예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건가요?”
“어떤 방향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 컨텍스트를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게 뭐고, 나중에 해도 되는 건 뭐예요?”
올해 2분기에 회사 타운홀미팅에서 강렬한 메시지가 있었어요.
“방어만 하면 그 자리를 다른 이에게 비켜줘야 할 것이다.”
무작정 “안 돼요”라고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닙니다.
왜 안 되는지,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대신 뭘 하면 되는지까지 전달해야 팀이 앞으로 갑니다.
모호함을 좁힌다는 건 결국 방향을 맞추는 일이었어요. 회사가 가려는 곳과 내가 가려는 곳이 같아야, 질문도 의미가 있고 답도 빨라집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문제를 구체화하는 능력. 아직 멀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혼자의 실패, 팀의 성공
올해 3월,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됐습니다. 야간 대학원 첫 등교와, 5개월간 준비한 바디프로필 촬영.
바디프로필은 벌칙으로 시작했어요. 여자친구와 한 내기에서 졌거든요. 새벽 6시에 헬스장, 닭가슴살과 햇반으로 버틴 5개월.
솔직히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촬영 당일, 조명 아래 서 있을 때 뿌듯했습니다.
나, 정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낮에는 회사, 저녁에는 강의실, 새벽에는 헬스장. 과제 마감과 스프린트 마감이 같은 주에 겹치는 날이면 대체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요.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은데, 돌아보니 그 와중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두 개나 했네요.
Kepler Pop은 혼자 만들었습니다. 4월부터 7월까지, 퇴근 후와 주말을 쏟았어요. 퍼즐 게임이었는데, 나름 참신한 메카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테스트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생각했어요.
스토어에 앱을 올리며 배운 몇 가지 - 인게임 프리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출시하고 일주일 뒤, GA 콘솔을 열었습니다.
| 단계 | 인원 |
|---|---|
| 로그인 화면 진입 | 1,247명 |
| 로그인 완료 | 124명 |
| 튜토리얼 완료 | 31명 |
| D7 리텐션 | 2명 |
90%가 로그인 화면에서 이탈했어요. 게임을 시작도 안 하고요.
그 과정애서 로그인을 없애보면서 전환률이 상승했지만 드라마틱하진 않았습니다.
그제야 냉정하게 인정했습니다. “이 게임, 재미없어.”
노트북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석 달간 퇴근 후 시간, 주말 오후,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들이 헛된 건 아니었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인정해야 했어요.
혼자 만들 때의 문제는, 자신에게 거짓말하기 쉽다는 거예요. “이 정도면 됐지”가 진짜 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혼자서는 계속 만드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설화는 달랐습니다.
10월, 공모전을 앞두고 셋이 모였어요. 저, 문성님, 승주님. 문성님은 그래픽을, 승주님과 저는 개발을 맡았습니다.
첫 주에 에셋 없이 기본 동작만 만들어서 공유했어요. 문성님과 승주님이 제가 느끼지 못했던 조이스틱의 불편함을 짚어줬습니다. 혼자였으면 몰랐을 거예요.
새벽에 문성님이 첫 캐릭터인 호랑이 시안을 올렸어요.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새벽까지 작업한 건데, 솔직히 게임 분위기와 안 맞았거든요.
고민 끝에 말씀드렸어요. “컨셉과 조금 어색한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네요. 다른 방향으로 몇 개 더 그려볼게요.”
그 피드백 이후로 여러 시안이 오갔고, 설화의 대표 캐릭터 “무녀”가 탄생했습니다.
(오늘이 마감인) 앱인토스 HTML5 공모전 도전기 - 인게임 프리뷰
그 이후로는 솔직해지기 쉬워졌습니다. “이 부분 별로예요”라는 말이 공격이 아니라 협업이 됐어요. 서로의 기준이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답이 나왔습니다.
좋은 동료는 편한 동료가 아니라, 솔직할 수 있는 동료였어요.
제출 마감 당일. 알려진 버그도 있었고, MVP라서 계획했던 많은 컨텐츠의 절반도 못 넣었어요.
제출 버튼 위에 커서를 올리고 몇 초간 멈췄습니다. ‘이거 괜찮을까?’
셋이 음성 통화를 켜고 합의했습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영원히 못 내요. 일단 내죠.”
클릭했습니다.
설화는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발전시키고 있어요.
ZERO에서 5,409까지 - 수상 내역 일부
7명을 위한 게임
“설화를 자식처럼 키워보자.”
장려상 수상 직후 우리가 한 약속입니다. 과한 표현인데, 진심이었어요.
공모전이 끝나고도 업데이트를 계속했습니다. 버그 수정, 밸런스 조정, 새로운 컨텐츠. 의무가 아니었어요. 그냥 하고 싶었습니다.
D35, 출시 35일 후. 앱인토스 콘솔을 열었어요.
DAU: 7명
7명이었습니다. 5,409명이 다운받았는데, 35일 후에도 켜는 사람은 7명이었어요.
처음엔 허탈했어요. 이게 뭐야, 싶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이 7명은 누굴까. 아침에 지하철에서 켤까, 자기 전에 침대에서 켤까. 어떤 스테이지에서 막혀 있을까. 다음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35일 동안 설화를 지워버리지 않은 사람들. 우리가 만든 게 누군가의 하루 끝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회사에서는 70만 사용자를 위한 앱을 만들고, 퇴근 후에는 7명을 위한 게임을 다듬었습니다. 규모는 만 배나 차이 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같았어요.
누군가 쓰고 있다는 사실. 그게 책임감이 되고, 책임감이 지속으로 이어지더라고요.
2025년
| 구분 | 내용 |
|---|---|
| 회사 | 누적 매출 100억 돌파, 2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
| 제품 | D’CENT 앱 리뉴얼, 220개국 70만 사용자 |
| 개인 | 블로그 10편, 게임 2개 출시, 공모전 장려상, 대학원 1년차, 바디프로필 |
| 설화 | 5,409명 유저, D35 리텐션 7명 |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하지만 진짜 남은 건 숫자 뿐만이 아니에요.
혼자보다 함께가 더 멀리 간다는 걸 온몸으로 배운 한 해였습니다.
마치며
설화를 MVP로 제출했어요. 유물, 단계별 스테이지, 추가 캐릭터 전부 구현하지 못했죠. 하지만 저희는 생각했어요. “안 내면 아무것도 안 남아요.”
완벽하진 않았지만, 세상에 나왔어요. 그리고 지금도 수정하고 있습니다. 버그도 지속적으로 잡아내고 있고, 다양한 새 컨텐츠도 넣고 있어요. 제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작년의 저는 달랐어요. 혼자 다 하려고 했고, 도움 요청이 어려웠고, 완벽해진 다음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Kepler Pop의 실패가 그랬어요. 석 달을 혼자 만들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무너졌어요.
설화는 달랐습니다. 셋이 솔직하게 부딪혔고, 불완전한 채로 내보냈고, 지금도 함께 다듬고 있어요. 7명의 유저가 남아 있는 한, 계속 만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계속 만드는 사람으로 남으려면,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걸.
회사에서 배운 건 코드만이 아니었어요. 제품이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그 비전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료들과 부딪히며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혼자 옳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함께 옳은 방향을 찾아가는 법. 그게 제 사이드 프로젝트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내년 이맘때, 지금의 제가 부끄러워지면 좋겠어요.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니까.
계속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회사에서도, 퇴근 후에도, 강의실을 나서고도. 완벽하지 않아도, 느리더라도. 함께 만들고, 결국 세상에 내놓는 사람.
2025년, 고생하셨습니다.





